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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표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진리표를 공부하다 p→q에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p→q에서 전제(p)가 거짓일 때 조건문(p→q)가 항상 참이라는 것이다. 누구는 이것을 공허참(vacuous truth)으로 설명하고 누구는 집합으로 설명하고 누구는 가정이 거짓일 때에는 논할 수 없기 때문이고 누구는 형식논리학에서 다른 명제의 참, 거짓을 논하기 위해 약속한 것이라고 하는 등 다양한 설명이 있다. 심지어 누군가는 "가정이 거짓이면 결론이 참"이라는 식의 잘못된 설명도 한다. 이때문에 철학사전, 서적, 유튜브, 강의 등 다양한 것들을 찾아보았고 드디어 아주 명확하고 쉽게 왜 가정이 거짓일 때 조건문이 항상 참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아래에 적어둔다.

 

목차

수학적 배경 없이 논리학의 정의로 설명

p→q, q→p, p⇔q의 정의

 

p→q

이를 한국어로는 "p이면 q이다" 이렇게 번역한다. 그런데 이것은 영어로 "If p then q"로 읽으며 이에 대한 논리학적 설명은 "If the first part is true, the second part must be true as well"이다. 이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만약 p가 참이라면 반드시 q는 참이다"이다. 즉, 참에 대해서만 논한다. 우리는 p→q를 "p이면 q이다"라고 했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생긴다. 바로 시제와 인과관계라는 것이다. 다음 문장을 생각해보자.

 

p: 나는 배가 고프다.(I am hungry)

q: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I want to eat something)

 

위 두 문장을 한국어로, 영어로 합쳐보자.

 

한국어: "만약 내가 배가 고프다면,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싶을 것이다"

영어: "If i am hungry, then I want to eat something"

 

언뜻 보면 한국어, 영어 둘 다 비슷해보이고 비교적 번역도 잘 된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함정이 있다. 우리는 한국어로 저 문장을 보면 일상적으로 배가 고팠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어에서는 가정법에서 시제를 미래형으로 자동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의 영어를 논리학에 적용해 조금 더 길게 뜻이 전달되도록 번역한다면 다음과 같다.

 

"만약 '나는 배가 고프다'가 참이라면, 반드시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 또한 참이다"

 

이렇게 시제로부터 벗어났다. 왜 없앴는지는 조금만 더 읽어보면 나온다. 이제 인과관계에서 벗어날 차례이다. 이런 오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보통 예시로 드는 것이 인과관계가 있어보이는 것들을 예시로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이유는 그것이 직관적으로 많이 와닿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는 p가 참이라면(나는 배가 고프다) 반드시 q도 참이다(나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에 맞게 잘 번역했어도 무의식적인 인과관계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이제 다른 예를 들어보겠다.

 

p: 오늘 집 앞 옷가게가 11시에 문을 닫는다.

q: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

 

p와 q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를 위의 방법대로 p→q에 대입해보자.

 

"만약 '오늘 집 앞 옷가게가 11시에 문을 닫는다'가 참이라면, 반드시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 또한 참이다"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두 문장이지만, "만약 '오늘 집 앞 옷가게가 11시에 문을 닫는다'가 참이라면, 반드시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 또한 참이다"라는 문장은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신은이렇게 메타언어에 대한 첫걸음을 뗐다.) 다양한 예시가 나올 수 있다. 오늘 옷가게가 11시에 문을 닫았을 때 때마침 내가 무엇인가를 먹고 싶었다면 위 문장은 참이다. 그런데 오늘 옷가게가 11시에 문을 닫았을 때 내가 30분 전에 과식을 해서 무언가를 먹고 싶지 않다면? 위 문장은 거짓이다. 이것이 상단의 진리표 TT >> T, TF >> F에 대한 설명이다.

 

 비록 인과관계가 없는 두 문장이더라도, 위 문장은 참, 거짓을 판단할 수 있다. 명제를 다룰 때 이런 관점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렇게 해야 논리적인 상황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과관계를 벗어났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전제가 거짓일 때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논리학에서는 전제가 거짓일 때 조건문을 참이라고 하고 이를 공허참(vacuous truth)이라고 한다. 왜 이렇게 정의했냐면, 뒤의 p⇔q의 정의와 맞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대한 설명은 p⇔q의 정의를 한 후 설명할 것이다. 이제 q→p를 설명할 것인데, 이건 굉장히 쉽게 끝난다.

 

q→p

p: 오늘 집 앞 옷가게가 11시에 문을 닫는다.

q: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

 

이를 q→p에 대입하면 아래와 같다.

 

"만약 '나는 무엇인가를 먹고 싶다'가 참이라면, 반드시 '오늘 집 앞 옷가게가 11시에 문을 닫는다' 또한 참이다"

 

앞으로 이렇게 대입하면 된다. 끝이다. 당장 알 수 있는 것은 p→q가 참이라고 q→p 가 반드시 참이 아니라는 것도 덤이다.

 

p⇔q

이는 영어로 biconditional이며 쌍조건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국어의 "p이면 q이다"에서 시작해보도록 하겠다. 왜냐고? 영어로도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쌍조건문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p이면 q이다.”라는 명제와 “q이면 p이다.”라는 두 명제가 있다고 하자. 이 두 명제를 합해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p이면 q이고, q이면 p이다,”라는 명제가 나오게 된다. 즉, 수학에서 말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이것을 논리학에서는 쌍조건문이라고 한다.

출처: 사이언스올 과학백과사전

 

이번에는 영어의 정의를 찾아보자. biconditional의 설명은 "p if and only if q"이고 논리학적 설명은 "If one is true, then the other is true; if one is false, then the other is false"이다. 번역하면 "만약 p가 참이라면 q도 참이고, 만약 q가 거짓이면 p도 거짓이다"이다. 왜 여기서는 거짓인 경우에 대해서도 다룰까? 그리고 왜 한국어로 이해해도 적절할까? 이러한 이유는 논리학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의견이지만, 한국인들도 이에 대한 경우를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에 p⇔q에 대한 설명과 기호, 정의는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분명 둘이 같은 경우(p⇔q)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을 것이고 이후 이를 분해해(p→q, q→p) 논의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p⇔q 이후 p→q,q→p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더 적절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의견은 뒤로 하고 지금까지 다룬 명제들에 대해 진리표를 작성해보겠다.

 

 

우리가 정의하지 않은 부분은 공백으로 비워놨다. 그리고 위의 영어 설명을 다시 보자.

p→q: "If p then q"

q→p: "If q then p"

p⇔q: "p if and only if q" 이것은 "If p then q and If q then p"이다.

 

우리는 and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p⇔q 연산은 p→q, q→p의 and 연산이다. 이제 정해지지 않은 빈 공간에 대해 정의해보자. 먼저 거짓인 경우로 정의해보겠다.

 

 

노란 부분을 F로 하였다. 그래도 p→q, q→p 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어보인다. 어차피 연산의 결과가 아니라 정의이고 우리는 지금 정의하는 입장이니까. 그런데 "원래정의"의 초록색 부분과 "연산값"의 주황색 부분을 보자. p⇔q 연산자는 p→q, q→p의 and 연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F와 F를 and 연산하면 F가 나온다. 이렇게 하면 p⇔q 연산자는p→q, q→p의 and 연산이라는 정의에 위배된다. 그렇다면 노란 부분을 T로 해보자.

 

 

이번에는 "원래정의"의 초록색 부분과 "연산값"의 초록색 부분 둘 다 T로 나온다!!! 드디어 p⇔q의 정의 "만약 p가 참이라면 q도 참이고, 만약 q가 거짓이면 p도 거짓이다" p⇔q 연산은 p→q, q→p의 and 연산 둘 다 같은 값을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p이면 q에서 가정, 전제가 거짓일 때 조건문(p→q)이 항상 참"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돌고 돌아 제목의 이유에 대해 설명해보았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약 3일 밤낮을 투자했고 결국 나는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했고 앞으로도 절대 까먹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위 명제들을 공집합 개념(공집합은 모든 집합의 부분집합)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말 편하고 쉽지만 수학의 도움 없이 논리학의 정의만으로 이를 증명하는 것도 또하나의 성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음번에는 집합 개념으로 이를 설명해보겠다. 독자들도 이 글로 절대 이에 대해 까먹지 않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비전공자가 쓴 글이므로 논리적 허점이 분명히 존재할 겁니다...! 논리적 오류에 대해 지적해주신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더 공부 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 p가 거짓이라고 하는 것과 p의 부정은 다른 겁니다! "p가 거짓"이라 함은 "p의 진리집합 P의 원소가 하나도 없음"이라는 뜻이고 p의 부정은 진리집합 P의 여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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