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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운율을 맞춘 표어문구로는 우리나라 최고가 아닐까 한다. 이 표어가 나왔던 1960년대 당시는 유아사망률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출산률이 급증한 소위 말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시대이다. 그러나 애초에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이는 식량부족으로부터 기인한다. 인구의 증가는 반드시 식량의 수요를 증가시킨다. 식량 문제는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를 낳아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산아제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금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생각일 뿐 유전자의 번영을 목표로 진화해온 생명의 욕구를 억누르기에는 부족했다. “욕구는 만족하되 아이는 낳지 않게 하는 법이 없을까?”, 피임의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고대의 피임법

석류. 인간의 에스트로겐과 동일한 분자 구조를 가진 식물성 에스트로겐을 함유하고 있다.

인류가 섹스를 임신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노력은 기원전 4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BC 4000년경 이집트인들은 석류 씨를 피임약으로 사용했다. 물론 이 당시에는 호르몬에 대한 생각이 없이 경험으로 방법을 추론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석류 씨에는 에스트로겐이 들어 있는데 에스트로겐이 많아지면 여성은 배란을 억제한다. 물론 오늘날 널리 쓰이는 피임약처럼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고 과도하게 먹어야 했겠지만 효과는 미미하게나마 있었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기원전 1850, 고대 이집트의 페트리 파피루스(Petri Papyrus) 종이에는 악어의 똥을 탄산나트륨, 벌꿀이나 열매와 혼합해 경단처럼 만든 다음 성관계 전 질 안에 삽입함으로써 정자의 통로를 막거나 죽이는 역할을 기대했다. 일종의 피임용 좌약이자 페서리(pessary)였다. 그러나 악어의 똥은 약알칼리성을 띄고 있기에 오히려 정자의 운동성을 증진시키는 효과를 내 정자의 힘을 더욱 북돋아준 셈이 되었다. 반면 끈끈한 벌꿀은 정자의 운동성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 있다. 성공률은 약 50% 이내, 이 노력은 지금껏 인류가 쌓아온 과학적 지식 없이 경험에 의거하여 나온 타당하지는 않은 방법이지만 당시에도 임신을 피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피임약은 시간이 지나면서 코끼리의 똥으로 바뀌었고 그 후 3천년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사용되었다.

 

성병으로부터의 해방, 콘돔

도구로서의 발명 중 하나인 콘돔, 성교 중에 임신이나 성병(임질, 매독 등) 감염을 막기 위해 흔히 쓰이는 피임 도구로서, 신축성이 있는 천연고무인 라텍스나 폴리우레탄 등의 재질로 만들어진 갖가지 맛의 박막의 주머니이다. 가장 대중적이고 구하기도 쉬우며 부작용도 적고 사용의 난이도나 편리성이 다른 방법에 비해 월등히 우월하여 자주 사용되고 있다. 성병의 예방에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기 때문에, 세계 보건 기구에서는 에이즈 대책의 일환으로 콘돔의 사용 추진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사용법만 제대로 지키면 최대 98%까지 올라가는 성공률을 자랑하는 콘돔도 만들어진 역사는 다른 피임법에 비해 긴 편이지만 현대적 형태의 콘돔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호색한 찰스 2세와 양의 창자로 만든 콘돔

17세기 중반, 영국 왕 찰스 2세라는 인물이 있었다. “쾌락왕으로 알려진 찰스 2, 보통 한 두 명 두는 공식 애첩을 한 번에 여러 명 두기도 했고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과 결혼했으나 서자만 20명 넘게 아주 많은 등 방탕한 생활을 하였지만 그런 그도 성병이 두려웠나보다. 그는 당시의 법률고문 콘돔 백작에게 성병 방지책을 지시했다. 콘돔은 이를 받들어 양의 창자로 남성용 피임기구를 만들었다. 이후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콘돔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 이후 맹장, 가죽을 이용한 콘돔 등 여러 콘돔이 발명되었지만 그러나 이 당시 창자 재질로 만든 콘돔은 원료가 원료인지라 주로 고위층이 사용했는데, 미지근한 물에 닦아 반복 사용이 가능하도록 특별 관리해주는 별도의 전문 제조업체까지 등장했을 정도이다.

고무산업의 혁명과 함께 등장한 라텍스는 수술용 장갑, 콘돔, 옷 등 여러 분야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후 콘돔은 1839년 타이어 개발자로 알려진 미국의 발명가 찰스 굿이어에 의해 고무 재질로 바뀌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그는 천연고무에다 유황을 가해 반응시키는 가황법을 발견해 탄력이 더욱 강한 고무를 만들어냈다. 본래 천연고무는 열을 가하면 탄성이 사라진다. 하지만 여기에 황 성분을 첨가해 150 안팎으로 가열하면 분자의 결합이 달라진다. 유황 분자가 고무 분자와 고무 분자 사이에 다리를 걸치는 모양으로 결합된다. 이러한 가교 결합 때문에 잡아당겨도 고무 분자가 잘 미끄러지지 않을 뿐더러 탄성이 배가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라텍스 고무이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콘돔 소재로 신축성이 매우 뛰어나다. 라텍스가 콘돔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굿이어의 고무 콘돔을 두고 ‘19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고 칭송했다. 찰스 2세의 방탕함으로부터 출발한 콘돔, 그가 역사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을지라도 임신과 질병으로부터의 해방을 이룩하게 한 1등 공신이라고 당시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남성의 피임도구로서 획기적인 발명을 이끈 찰스 2세와 이를 널리 보급시킨 발명가 굿이어가 있었다면 여성의 피임방법에도 입지전적인 인물이 있으니, 하버드의 그레고리 굿윈 핀커스 박사이다.

 

주체적 여성의 삶, 피임약

그레고리 핀커스 박사, 경구 피임약의 개발로 여성이 임신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하였다.

 

 

1952년 미국 생물학자 그레고리 핀커스 박사는 노르에신드론이라는 합성물질을 토끼와 쥐에 주입해보니 난자 자체가 배란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수정이 될 기회조차 주지 않음을 발견한 것이다. 핀커스는 산부인과 의사 존 록의 도움으로 이를 알약으로 만들었다. 이 약의 작동메커니즘은 인체가 임신 상태인 것처럼 뇌하수체를 속이는 것이다. 1960 5 9, 미 식품의약국(FDA)이 알약의 사용을 승인하면서 부작용이 없지 않았지만 여성들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원치 않는 임신의 공포로부터 해방됐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피임약의 출현이다.

세상을 바꾼 15인의 업적

’2000년 동안의 위대한 발명‘ (존 브록만)에서 경구 피임약은 인류의 위대한 발명 121가지에 위풍당당하게 선발된다. 위스콘신 대학의 인류학자 레포스키는 이 약의 위대함을 두 가지로 요약했다. 하나는 인구폭발로 인한 재앙에서 벗어나게 된 점, 그리고 여성이 스스로 임신을 조절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가 피임약 개발 40주년 특집 기사에서 내린 평가는 그 의의를 잘 요약해 준다. “아스피린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비아그라만큼 매스컴의 각광을 받지도 못했지만 먹는 피임약처럼 위력적인 약은 없다

 

현대의 다양한 피임법

양말 샌들 짱!

20세기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인류는 이 둘 이외에도 다양한 피임법을 개발해냈다. 페미돔, 질내고리, 살정자제, 루프, 배란주기 관찰법, 질외사정법, 모유 수유, 미레나, 임플라논, 그리고 불임수술(정관, 난관수술)이 그것이다. 이 중 성교육 시간에 배우지 않았던 생소한 피임법들과 최신 기술, 특정 피임법에 대한 의사들의 입장, 필자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미레나 시술 시 모습 ,  루프와 비슷하지만 안에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다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미레나는 자궁 내 피임 장치의 일종으로 T자형의 작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는 저장소가 있어서 매일 일정한 소량의 레보노게스트렐(levonorgestrel)이라는 호르몬을 자궁내막에 직접 분비하는 장치이다. 자궁에 삽입한 후 5년간 효과가 있으며, 가역적인 피임법이기 때문에 장치를 제거하면 다시 임신이 가능하다. 시술 후 생리 양이 줄어들고 생리 기간이 짧아지며 1년 정도 지나면 생리가 중단되는 경우도 있다. 제거하면 생리는 정상으로 돌아온다. 쉽게 말해 장기용 루프인 셈이다.

 

임플라논 서울대학교병원 건강칼럼에 따르면 막대 모양으로 생겨 피하에 이식하는 피임 기구이다. 임플라논의 크기는 보통 길이 4cm, 두께 2mm 정도로 대부분 팔의 피하 부위에 삽입한다. 팔에 심어서 임신을 방지하는 피임법이다. 임플라논은 에토노게스트렐(etonogestrel)이라는 프로게스틴(progestin, 합성 프로게스테론)의 활동성 대사 물질을 60mg 정도 함유하고 있으며 하루에 일정량, 보통 30mcg을 분비한다. 장기간의 가역적인 피임을 원하는 여성이나 다른 피임 방법에 문제가 있는 여성 등이 시술한다.

 

그런데 지금껏 발전해온 피임법은 대부분 여성을 타겟으로 한다. 부작용이 많이 사라진 현대라지만 여성용 피임약은 여전히 체중증가, 메스꺼움, 가슴통증, 여드름, 우울감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음에도 남성에게 있어선 피임법답지 않은 질외사정과 콘돔, 정관수술이 끝이다. 연구를 안 했는가 하면 또 그렇지 않다. 2016년 가역성이며 정관수술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피임법인 '베이슬젤(vasalgel)'이 개발되었고 2019년에는 남성용 경구 피임약, 그리고 남성용 바르는 피임약 등이 의학 컨퍼런스에 등장했음에도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분석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제약회사의 수익률 악화라고 한다. 가역적 남성 피임법은 1회 시행이면 충분하며 해당 남성의 파트너는 피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효과 좋은 1회성 판매로 손님과 잠재고객을 잃기보다 꾸준한 복용이 필요한 경구 피임약의 판매가 제약회사에 있어선 훨씬 꾸준한 수익이다. 씁쓸한 현실이다.

 

기술만 최첨단, 우리는?

이렇게만 보면 인간은 발전하는 과학기술, 의술을 방탕한 성생활을 하기 위해 이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극심한 생리통을 없애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시술받는 경우도 있으며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시술을 하였다고 으레 넘겨짚는 행동은 우를 범하는 지름길이다. 그리고 피임이 무분별한 성생활의 대표적 부작용인 성병을 모두 막지는 못 한다. 과학기술은 산업혁명 이후 워낙 빠르게 발전했으나 윤리의식은 아직 제자리 걸음이라 할 정도로 많은 사건사고들이 일어나는 현재이다. 우리는 분별력을 갖춰야만 한다.

당장 인터넷에서 미혼 정관수술을 검색하면 미혼인데 정관수술 받을 수 있는 곳 없나요?’ 라는 글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수요가 많음에도 한국의 대다수 비뇨기과 의사분들이 거절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정관수술은 임신을 원치 않는 부부를 위해 나온 수술이다. 단순히 성관계에서의 수용성(acceptability), 즉 성감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결혼 전 무분별한 성관계를 하기 위해 이를 찾는 남성들을 대상으로 윤리적으로 수술을 하지 말자는 것이 대한비뇨기과학회의 입장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가 존재하기에 미혼 정관수술을 한 사람은 있다.

 

성에 대한 문화지체현상

피임약의 발명으로 인한 여성 인권의 자주적 신장, 콘돔의 발명으로 인한 성병과 임신의 예방, 다른 여러 피임법들의 발명으로 인한 성욕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더 이상 현대판 흥부는 발전된 나라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섹스와 탄생은 동전의 양면이 아니라 분리되었다. 섹스는 즐겨도 피임만 잘 하면 탄생은 막을 수 있고, 섹스가 없어도 인공수정으로 생명은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21세기 생명과학이 인류에게 선사한 자유이다.

하지만 이렇게 피임에 대한 기술의 발전에 반하여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제대로된 성의식 혹은 성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확립되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성범죄율, 기술의 발전을 무분별한 섹스의 도구로만 쓰는 사람들, 제대로된 성의식과 관념 없이 육체만 탐닉하고 욕구만을 추구하는 사회, 이것이 21세기 시대의 현실이다. 고도화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비해 문화는 한없이 지체되고 있다. 이른바 성에 대한 문화지체현상이다.

문화지체현상, 물질 문화의 급속한 변동에 비해 비물질 문화의 완만한 변화가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현상이다. 문명은 우리에게 자식에 대한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로 이끌어주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그에 맞는 성의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에만 총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음성화된 성교육을 양지로 이끌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기술에 대해선 세계를 이끌어가지만 다만 성교육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초등, 중등교육부터 올바른 성에 대한 교육, 이론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교육의 질 향상과 시간의 확대, 더 나아가 대학, 회사에서도 계속되는 성교육으로 올바른 문화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여 낙태를 선택하게 된다면 생명윤리적 문제를 말하지 않더라도 여성의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될 수 있다. 피임의 역사를 볼 때 인류가 임신을 하지 않고 오롯이 섹스를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섹스는 단순히 종족 보존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라 사랑, 즐거움, 쾌락을 동반하는 중요한 소통이기에 그렇다. ‘소통이기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소통을 쾌락으로만 치부하지 말기를 바란다. 살기 위해 먹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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